EP.018 가공방식이 다르면, 로스팅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Hyper Log의 그린빈 아카이브에는 국내 유통 생두 2,528종이 등록돼 있고, 가공방식 필터를 보면 워시드 1,060종(42%)·내추럴 594종(23%)·허니 134종·무산소 96종·세미워시드 51종·웻헐 14종이다. 이 여섯 가지 가공방식이 로스팅 초기 화력과 건조 단계 접근을 서로 다르게 요구한다.
로스팅 아카이브를 쓰면서 매번 실제 로그 데이터를 확인하려고 계정에 들어갈 때마다, 화면 상단 메뉴에 낯선 항목이 하나 눈에 띄었다. "그린빈 아카이브." 로그인 없이도 볼 수 있는 페이지였고, 열어보니 국내에서 유통되는 생두 2,528종을 산지·품종·가공방식·가격으로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였다. 페이지 상단 문구는 이랬다. "국내 유통 생두를 산지·품종·가공방식·가격으로 한 번에 찾아보세요. 마음에 드는 생두는 Hyper Log 생두 등록에서 바로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 편은 이 기능 자체를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필터 목록을 들여다보다가 새삼 눈에 들어온 숫자 하나 때문에 쓰게 됐다 — 가공방식 항목이었다.
가공(processing) 필터를 보면 워시드 1,060종, 내추럴 594종, 허니 134종, 무산소 96종, 세미워시드 51종, 웻헐 14종이 잡혔다. 전체 2,528종 중 워시드가 압도적 비중(약 42%)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내추럴(약 23%)이다. 이 비율 자체도 흥미롭지만, 로스터 입장에서 더 중요한 건 이 여섯 가지 가공방식이 로스팅 접근을 서로 다르게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가공방식은 커피 체리에서 생두를 분리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워시드는 과육을 물로 씻어내고 발효조에서 점액질만 제거한 뒤 건조하는 방식이라, 생두 표면이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로트 간 편차가 작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내추럴은 체리를 통째로 건조대에 널어 말리는 방식이라 과육의 당분과 수분이 생두에 더 오래, 더 깊게 스며든다. 허니는 그 중간 — 점액질을 일부 남긴 채 건조한다. 무산소(anaerobic)는 밀폐 탱크에서 산소를 차단한 채 발효시켜 향미가 더 강하고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대신, 배치마다 발효 강도 편차가 클 수 있다고 업계에서 흔히 이야기된다. 웻헐(wet-hulled, 인도네시아식 길링 바사)은 수분이 남은 상태에서 파치먼트를 벗겨내는 독특한 공정이라 생두 밀도와 색이 다른 가공방식과 확연히 다르다.
이 차이가 로스팅에 어떻게 이어지는가. 흔히 이야기되는 경험칙은 이렇다 — 당분·수분 함량이 높을수록 초반에 태우기 쉬워지고(스코칭·티핑), 건조 단계를 더 길고 완만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것. 내추럴이나 허니처럼 과육 성분이 많이 남은 원두는 표면이 먼저 갈변할 위험이 커서 초기 화력을 워시드보다 조금 더 보수적으로 잡는 로스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무산소 가공 원두는 발효 특유의 복합적 향미를 살리기 위해 오히려 로스팅 자체는 더 짧고 라이트하게 가져가는 경우도 흔하다. 다만 이런 경향은 로스터마다, 배치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일반적인 업계 통념이지, 모든 생두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공식은 아니다 — 결국 확정하는 건 실제 로스팅 로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린빈 아카이브와 로그 기록 기능이 실제로 이어진다. 페이지 설명대로 "마음에 드는 생두는 Hyper Log 생두 등록에서 바로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가공방식의 원두를 골랐는지가 처음부터 로그에 남는다. 나중에 로그를 다시 열어봤을 때 "왜 이 배치는 초기 화력을 낮게 잡았지"를 되짚어볼 근거가, 생두를 고르는 순간부터 이미 기록되어 있는 셈이다. 반대로 가공방식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몇 달 뒤 "이 원두는 유독 태우기 쉬웠다"는 감각만 남고 그게 가공방식 때문이었는지 다른 변수 때문이었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어진다.
정직하게 짚어야 할 부분도 있다. 이 아카이브 페이지는 "가격·재고는 공급사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매 전 반드시 공급사 페이지에서 최종 확인해주세요"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즉 이 데이터베이스는 실시간 재고 시스템이 아니라 참고용 검색 도구이고, 위에서 언급한 가공방식별 로스팅 경향 역시 검증된 물리 법칙이 아니라 업계에 널리 퍼진 경험적 통념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편들이 반복해서 강조해온 원칙과 같다 — 일반론은 출발점일 뿐, 확정은 언제나 실제 로그가 한다.
결국 가공방식은 로스터가 원두를 받아들기 전, 가장 먼저 마주치는 변수다. 같은 산지, 같은 품종이라도 워시드와 내추럴은 다른 원두처럼 다뤄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다루는 첫걸음은 화려한 이론이 아니라, 생두를 고른 순간부터 무엇을 골랐는지 정확히 기록해두는 것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