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1 산지도 가격도 없는 생두가 있다
그린빈 아카이브 60종 샘플에서 산지 태그가 아예 없는 블렌드 상품(카페노갈레스 3종)과 가격 대신 '가격 문의'만 적힌 상품, 같은 이름인데 가격이 다른 중복 리스팅까지 확인했다. 등급·산지 표기 불일치와는 다른 층위의 데이터 공백이다.
그린빈 아카이브 최신순 목록을 60종 정도 넘기다 보면 카드 레이아웃에서 유독 눈에 띄는 예외 두 가지를 만난다. 대부분의 카드는 산지 태그(예: "에티오피아", "콜롬비아")와 가공방식 태그(워시드·내추럴 등), 그리고 "OO원 / kg" 형태의 숫자 가격까지 세 요소가 항상 함께 붙어 나온다. 그런데 카페노갈레스라는 공급사의 상품 세 종 — AWG-01, HU-Decaf, CAdecaf — 은 카드 맨 위에 산지 태그 자리가 아예 비어 있고, 곧바로 가공방식(워시드·디카페인)만 붙어 있다. 상품명도 "AWG-01 / 다수 품종 혼합 / Washed"처럼 국가명 대신 "다수 품종 혼합"이라는 표기로 시작한다.
페이지의 구조화 데이터(JSON-LD)를 직접 열어 확인하면 이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다른 상품들은 예외 없이 countryOfOrigin 필드에 "에티오피아", "브라질" 같은 국가명이 채워져 있는데, 이 세 상품만 그 필드 자체가 통째로 빠져 있다. 화면에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데이터 구조 안에 애초에 그 값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상품명이 스스로 밝히고 있다 — 단일 산지 원두가 아니라 여러 품종을 섞은 블렌드이기 때문에, "산지"라는 단일 값으로 채울 항목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건 24번에서 다룬 문제와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24번은 필터 사이드바 상위 열네 곳에 없는 르완다·탄자니아 같은 산지들이 검색으로는 분명히 잡힌다는 내용이었다 — 즉 데이터는 있는데 필터 목록에서만 잘려나간 경우였다. 카페노갈레스의 세 블렌드 상품은 반대다. 검색으로도 찾을 수 없다 — 애초에 어떤 나라 이름으로도 매칭될 값이 없기 때문이다. 이 상품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은 "카페노갈레스"라는 브랜드명이나 "AWG-01" 같은 상품 코드로 직접 검색하는 것뿐이다.
같은 60종 안에는 또 다른 종류의 빈칸도 있었다. "니카라과 엘 수야탈 카투라 워시드"와 "에티오피아 시다모 G2" 두 상품은 가격 자리에 숫자 대신 "가격 문의"라는 문구만 적혀 있다. 나머지 58종은 예외 없이 "OO원 / kg" 형태의 구체적인 숫자였는데, 이 둘만 산지·가공방식·공급사(둘 다 엠아이커피) 태그는 정상적으로 붙어 있으면서 가격 필드만 비어 있다. 재고 상태를 나타내는 "품절" 태그와는 다른 결의 표기다 — 품절은 "이 가격에 예전엔 팔았다"는 기록이 남는 반면, 가격 문의는 판매 자체가 고정가로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다.
등급 표기가 산지별로 뒤섞여 있다는 건 21·26번에서 이미 다뤘던 이야기다. 그런데 그건 "표기 체계가 여러 개 섞여 있다"는 문제였지, 필드 자체가 비어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번에 확인한 두 가지 — 산지 필드가 아예 없는 블렌드, 가격 필드가 비어 있는 상품 — 는 표기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데이터 자체의 공백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아카이브가 공급사로부터 받은 정보를 그대로 옮긴다는 원칙(26번에서 확인한 태도)이 여기서도 똑같이 적용된 결과로 보인다 — 공급사가 산지나 가격을 명시하지 않았다면, 아카이브도 그 빈칸을 임의로 채우지 않고 그대로 비워둔다.
같은 샘플에서 중복으로 보이는 사례도 하나 발견했다. "온두라스 라스 비르히니아스 게이샤 Lot.2"라는 정확히 같은 이름의 상품이 커피리브레라는 같은 공급사로 60종 안에서 두 번 등장했는데, 가격이 86,000원/kg과 87,000원/kg으로 서로 달랐다. 같은 로트를 두 번 따로 등록한 것인지, 페이지를 새로고침하는 사이 가격이 바뀌면서 이전 스냅샷과 최신 스냅샷이 함께 노출된 것인지는 화면만 봐서는 구분할 수 없다. 30번에서 확인했던 "새로고침마다 값이 바뀌는 목업 데이터"와는 다른 맥락이지만, 아카이브의 숫자가 고정된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는 인상을 다시 한번 남기는 사례다.
결국 이번에 확인한 세 가지 — 산지 없는 블렌드, 가격 없는 상품, 같은 이름의 중복 가격 — 는 전부 아카이브가 "정리된 카탈로그"가 아니라 "공급사가 보낸 것을 있는 그대로 모아둔 목록"에 가깝다는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필터나 검색으로 원하는 조건을 좁혀도, 그 결과 안에는 여전히 빈칸과 애매함이 섞여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번에 확인한 범위는 명확히 좁다. 산지 없는 블렌드 상품은 카페노갈레스라는 한 공급사의 세 종만 직접 확인했고, 다른 마흔두 개 공급사 중에도 비슷한 블렌드 상품이 더 있는지는 전수조사하지 않았다. "가격 문의" 표기도 60종 샘플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건일 뿐, 전체 2,690종 중 몇 종이나 같은 표기를 쓰는지는 확인 범위 밖이다. 중복 리스팅도 원인(중복 등록인지 스냅샷 겹침인지)까지는 화면 정보만으로 판단할 수 없어 사실 관계만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