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0 배치를 미리 계획해두면, 로스팅은 무엇이 달라지는가
Hyper Log 홈페이지에 새로 걸린 "배치 도우미" 기능은 그날 돌릴 원두·용량 순서를 미리 큐에 담아두면, 로스팅 화면에서는 매번 생두를 고를 필요 없이 계획대로 자동 입력되는 방식이다. "로그" 모듈에 있지만 성격상 재고·생산을 다루는 "팩토리" 모듈과 실행 사이를 잇는 다리에 가깝다.
하루에 로스팅을 여러 배치 돌리는 로스터리라면 익숙한 장면이 있다. 한 배치가 끝나고 다음 배치로 넘어갈 때마다, 어떤 원두를 몇 그램 넣을지 화면에서 다시 골라야 한다. 배치가 네다섯 개쯤 이어지는 날이면 이 반복 자체가 작은 작업이 된다. Hyper Log 홈페이지 "모듈 구성" 섹션에는 이 지점을 겨냥한 신규 기능이 하나 걸려 있다. "배치 도우미 · NEW"라는 이름이다.
기능 설명은 짧다. "오늘의 로스팅을 미리 계획합니다"라는 한 줄 아래, 이렇게 적혀 있다. "생산할 원두·제품을 순서대로 담아두면, 실제 로스팅은 매번 생두를 고를 필요 없이 계획대로 자동 입력됩니다. 한 배치를 저장하면 다음 배치가 바로 이어져 그날의 생산 계획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요약하면, 로스팅을 시작하기 전에 그날 돌릴 배치 순서를 미리 큐에 담아두고, 로스팅 화면에서는 그 큐를 하나씩 소비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 목업에서 눈에 띄는 건 숫자나 원두 이름보다 "진행 중"이라는 표시 하나다. 네 개짜리 큐 중 마지막 네 번째 항목에만 이 표시가 붙어 있다. 즉 이 화면은 그냥 "오늘 할 일 목록"이 아니라, 지금 몇 번째 배치가 실제로 돌아가고 있는지까지 함께 보여주는 상태 표시다. 1번부터 3번까지는 이미 끝났다는 체크 표시가 붙어 있고, 마지막 4번이 지금 로스팅 중이라는 걸 이 화면 하나로 읽을 수 있다. 로스터가 "다음은 뭐였지"를 매번 떠올리거나 어딘가에 따로 적어둔 생산 계획표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지는 지점이다.
이 기능이 놓인 위치도 흘려볼 부분이 아니다. Hyper Log는 홈페이지에서 스스로를 "로그·커핑·팩토리·커뮤니티, 네 개 모듈, 하나의 데이터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배치 도우미는 이 중 "로그" 모듈 안에 있지만, 성격상 "팩토리" 모듈이 다루는 재고·생산 원장과 맞닿아 있다. 팩토리 화면에는 재고 1,482kg, 생산 24배치, 납품 8건 같은 숫자가 예시로 걸려 있는데, 이런 생산 계획을 세우는 쪽(팩토리)과 실제로 그 계획대로 로스터 앞에서 손을 움직이는 쪽(로그)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배치 도우미가 맡는 셈이다. 계획은 미리 세워두고, 실행은 그 계획을 하나씩 소비하기만 하면 되도록 만든다는 설계 방향이 이 기능 하나에 담겨 있다.
다만 이 글이 근거로 삼은 건 홈페이지에 공개된 소개 문구와 목업 화면 두 장뿐이다. 배치 도우미가 실제 로그인 화면 안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 큐에 담아둔 배치를 중간에 순서를 바꾸거나 빼는 게 가능한지, 배치 하나가 계획과 다르게 끝났을 때 다음 배치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같은 세부 동작은 이 페이지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이 아카이브는 로그인이 필요한 화면은 실제 계정에 들어가 확인한 경우에만 다루는데, 이번 편은 계정 로그인 없이 공개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만으로 작성했다 — 그래서 여기서는 홈페이지가 소개하는 만큼만 정직하게 옮겨 적는다.
그래도 이 기능이 겨냥하는 문제 자체는 분명하다. 로스팅 로그 소프트웨어가 흔히 잘하는 일은 "로스팅이 진행되는 동안" 벌어지는 일 — 온도 곡선을 그리고, RoR을 계산하고, 이벤트를 감지하는 일이다. 배치 도우미는 그 앞뒤, 그러니까 로스팅이 시작되기 전에 순서를 정해두는 일을 다룬다. 하루에 한 배치만 돌리는 로스터리라면 크게 체감하지 못할 기능이지만, 배치가 서너 개 이상 이어지는 날에는 매번 반복되던 작은 선택 하나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로스팅 자체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기능이라기보다, 로스팅과 로스팅 사이의 빈틈 하나를 없애는 기능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