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9 디벨롭 타임 비율(DTR), 숫자 하나가 다 말해주지 않는 것
배치 #16과 R&D #18/#19를 비교해보면 DTR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나온다. DTR은 결과를 설명하는 도구지, 결과를 결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로스팅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되는 숫자가 하나 있다. 디벨롭 타임 비율, 줄여서 DTR(Development Time Ratio)이다. 1차 크랙이 시작된 시점부터 배출까지 걸린 시간을 전체 로스팅 시간으로 나눈 비율이다. 하이퍼 로그에서는 로그를 저장할 때마다 이 값이 자동으로 계산돼서 로스팅 정보 패널에 함께 뜬다. 숫자 하나로 로스팅 전체를 요약해주는 것 같아서, 처음 이 지표를 접하면 이 숫자만 맞추면 되는구나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런데 실제로 로그를 여러 개 모아보면, 이 숫자 하나로는 설명이 안 되는 순간들이 계속 나온다.
계산식 자체는 단순하다. (배출 시각 − 1차 크랙 시각) ÷ 총 로스팅 시간 × 100. 원두 업계에서는 보통 이 값이 대략 20% 안팎이면 디벨롭이 짧다, 그보다 크게 넘어가면 디벨롭이 길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기준선은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라, 그냥 많이 통용되는 경험칙에 가깝다. 원두 종류, 로스터 기종, 배치 크기에 따라 좋은 DTR의 범위는 계속 달라진다.
실제 예시로 살펴보자. 에티오피아 구지 원두를 태환 프로스터 6kg으로 로스팅한 배치 #16은 총 11분 11초 중 1차 크랙이 8분 31초에 시작해서, DTR이 23.8%로 계산됐다. 이 배치는 건조 구간 4분 22초, 마이야르 구간 3분 29초, 디벨롭 구간 2분 40초로 나뉘었고, 메모에는 플레이버 매우 좋음, 표준 프로파일로 채택이라고 적혀 있다. 이 숫자만 보면 23.8%가 이 원두의 정답 DTR이구나라고 결론짓기 쉽다.
그런데 다른 배치를 비교해보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이전 글에서 다룬 하우스 블렌드 R&D #18과 #19 비교가 딱 그런 경우였다. #18은 DTR이 27.3%로 배치 #16보다도 높았는데, 로스팅 직후 메모에는 오히려 디벨롭 다소 짧음, 다음 배치 화력 -5%라고 적혀 있었다. 반면 화력을 낮춰 진행한 #19는 DTR이 25.6%로 더 낮았는데, 메모는 1차 크랙 후 30초 디벨롭, 단맛 잘 표현됨이었다. 숫자로만 보면 #18이 디벨롭이 더 길어야 정상인데, 실제로 로스팅한 사람이 느낀 결과는 정반대였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DTR은 1차 크랙부터 배출까지의 시간 비율만 알려줄 뿐, 그 구간에서 화력이 어떻게 운용됐는지, BT가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올랐는지는 전혀 담지 않는다. 같은 2분이라도 화력을 유지하면서 지나간 2분과, 화력을 확 줄여서 온도 상승이 거의 멈춘 채로 흘려보낸 2분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시계로 잰 시간은 같아도, 원두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반응의 양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18은 시간상으로는 길었지만 그 구간의 화력 운용이 반응을 충분히 밀어붙이지 못했고, #19는 시간은 짧아도 그 순간의 화력 운용이 더 효율적으로 반응을 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DTR이 쓸모없는 숫자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같은 원두, 같은 로스터로 여러 번 로스팅하면서 DTR을 함께 기록해두면, 그 숫자가 매번 비슷한 결과로 이어지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검증할 수 있다. 배치 #16처럼 이 DTR에서 이 원두가 좋았다는 기록이 모이면, 그건 그 원두·그 로스터 조합에 한해서는 꽤 믿을 만한 기준점이 된다. 문제는 그 기준을 다른 원두, 다른 로스터에도 그대로 옮기려고 할 때 생긴다. 원두마다 밀도와 수분함량이 다르고, 로스터마다 열전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원두에서 통했던 DTR 범위가 다른 원두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DTR은 결과를 설명하는 도구이지, 결과를 결정하는 도구는 아니다. 배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지금 DTR이 23%니까 됐다고 판단하는 것과, 디벨롭 구간 내내 ET·BT 곡선과 향, 색을 함께 확인하면서 판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과정이다. 후자를 계속하다 보면 DTR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숫자가 되고, 전자만 쫓아가면 숫자는 맞는데 컵은 이상한 경우를 반복하게 된다.
로그를 여러 번 모으다 보면 이 숫자를 보는 태도도 조금씩 바뀐다. 처음에는 정답 범위를 찾으려고 하지만, 배치가 늘어날수록 이 원두는 이 범위, 저 원두는 저 범위로 갈라지는 걸 보게 되고, 결국 DTR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각 원두·로스터 조합마다 따로 모아가는 개인화된 기준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다음에 로스팅할 때는 배출 직전에 DTR 숫자만 확인하지 말고, 그 숫자가 어떤 화력 운용 위에서 나왔는지도 메모에 함께 적어두는 걸 추천한다. 지금은 별거 아닌 한 줄 같아도, 나중에 로그를 나란히 놓고 돌아볼 때는 훨씬 많은 걸 말해주는 기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