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5 RoR이 0에 가까워질 때 — 스톨의 물리학
BT가 오르긴 하는데 속도가 거의 없는 상태, 스톨. RoR을 함께 읽어야 온도만으로는 안 보이는 이 위험 구간이 눈에 들어온다.
로스팅에서 RoR(Rate of Rise, 상승률)은 온도 자체보다 더 중요한 신호일 때가 많다. BT가 몇 도인지보다, BT가 얼마나 빠르게 오르고 있는지가 지금 로스팅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더 잘 말해준다. 그리고 이 RoR이 계속 떨어지다가 0에 가까워지는 순간, 로스터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상태가 온다. 바로 스톨이다.
정상적인 로스팅은 대개 ET와 BT의 RoR이 함께 완만하게 낮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공급도 줄고 승온 속도도 같이 줄어드는, 가장 이상적인 진행이다. 이 구간에서는 손을 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여기서 화력을 계속 높이면 승온이 너무 죽어서 역효과가 난다. 이 상태를 물리적으로 풀면, 로스터기가 밀어 넣는 열(Q_in)과 원두에서 빠져나가는 증발열(Q_evap)이 적절한 비율로 함께 줄어들면서, BT의 상승 속도 자체도 자연스럽게 완만해지는 구간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BT의 RoR이 배출 직전인데도 0에 가깝게 눌어붙어 있을 때다. 이게 스톨이다. 원두 온도가 오르기는 하는데 속도가 거의 없는 상태로, 방치하면 향미 발달이 멈춘 채로 시간만 흘러가는 언더디벨롭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에너지 수지식으로 보면, 유입되는 열(Q_in)이 증발로 빠져나가는 열(Q_evap)과 거의 같아져서 순 열량이 0에 수렴하는 상태다. 겉으로는 "온도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로스터기가 주는 열이 원두 온도를 올리는 데 쓰이지 못하고 대부분 수분을 날리는 데만 소모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이론 전체에서 유일하게 "화력을 올려도 되는" 예외가 이 상황이다. 다른 어떤 조합에서도 불은 올리지 않는다는 게 기본 원칙인데, 배출 직전 BT RoR이 거의 0일 때만 예외적으로 소량 개입한다. 이 예외는 딱 한 번, 소량으로만 적용하고, RoR이 회복되는 즉시 멈추는 게 원칙이다. 급하다고 해서 화력을 크게 얹으면, 스톨은 벗어나더라도 그 직후에 온도가 과도하게 튀어 오르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스톨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처음엔 "어, 왜 안 오르지" 싶다가, 그 상태가 몇십 초 이어지면 슬슬 불안해지고, 뒤늦게 화력을 크게 올리면 이번엔 반대로 온도가 확 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스톨은 조기에 알아챌수록 대응이 쉽다. RoR이 완전히 0이 되고 나서야 알아채면 이미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기 때문에, RoR이 서서히 낮아지는 추세 자체를 미리 눈여겨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스톨과 헷갈리기 쉬운 상태도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RoR이 아주 짧게 잠깐 낮아졌다가 금방 회복되는 경우는 진짜 스톨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흔들림일 수 있다. 신호가 몇 초 이상 지속되는지를 확인하고 판단하는 게, 순간적인 노이즈에 과잉 반응해서 불필요하게 화력을 만지는 실수를 줄여준다. 배출까지 시간이 충분히 남은 상태에서 RoR이 잠깐 눌리는 것과, 배출이 임박한 상태에서 RoR이 눌린 채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이는 것은 대응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핵심은 결국 이거다. 온도만 보면 스톨이 왜 위험한지 잘 안 보인다. RoR을 같이 봐야 "지금 오르고 있긴 한데, 사실상 멈춰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숫자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에너지 상태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게 RoR의 역할이다.
한 가지 더 기억해둘 점은, 스톨에 대응할 때조차 화력을 크게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출 직전이라는 조건에서, 그것도 소량으로, 한 번만, 회복되면 바로 멈춘다는 원칙을 지키는 편이 안전하다. 급한 마음에 화력을 크게 얹으면 스톨은 벗어나도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이론이 다른 상태에서는 예외를 거의 두지 않으면서 유독 이 순간에만 예외를 허용한 이유도, 그만큼 스톨이 향미 발달을 완전히 멈춰 세울 수 있는 위험한 구간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반대 상황, 화력을 올렸는데도 BT가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 경우를 다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