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1 로스팅 소프트웨어를 왜 직접 만들었나?
왜 로스팅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었나
먼저 이 말부터 하고 싶다. 아티산, 크롭스터, 파이어스코프 — 지금 많은 로스터들이 쓰는 프로그램들은 다 좋은 도구다. 오랜 시간 다듬어졌고, 실제로 훌륭하다. 이 글은 "기존 툴이 부족해서" 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서사는 사실과 다르고, 나는 그런 식으로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싶지 않다.
Hyper Log를 만든 진짜 이유는 훨씬 단순하다. 내가 원하는 기능을, 내 손으로 직접 구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공대를 나왔고, 코드를 짜는 게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식으로 로스팅 데이터를 보고 싶다"는 그림이 머릿속에 있었는데, 그걸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길 기다리는 대신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엔지니어라면 아마 이 마음을 알 것이다. 문제를 발견하면 손이 먼저 움직이는 그 느낌, 스펙 문서보다 프로토타입 코드를 먼저 짜고 싶어지는 그 조급함.
그리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내 전공을 커피라는 씬에 써먹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공학을 배웠는데 그게 취미인 커피와 아무 접점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로스팅은 사실 열전달, 시계열 데이터, 신호처리 같은 것들이 그대로 들어맞는 분야다. 온도 곡선 하나만 봐도 그 안에 대류·전도·복사가 다 섞여 있고, 로스팅 로그는 결국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신호를 다루는 문제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언어로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순수하게 재미있었다. 주말에 로스팅을 하다가 문득 "이 구간의 기울기를 수치로 뽑아보면 어떨까" 같은 생각이 들면, 그걸 바로 코드로 옮겨볼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있다는 게 이 프로젝트를 계속 밀고 나가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건 "내가 쓸 프로그램"이었다. 남에게 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내가 쓰려고 만든 거였고, 그러다 보니 무료로 내놓는 게 오히려 당연했다. 무료는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애초에 이게 내 도구였다는 사실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론이었다. 내가 쓸 프로그램에 내가 요금을 매길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서버 비용은 실제로 든다. 로그를 실시간으로 저장하고, 계정마다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계속 나간다. 그래서 광고를 아예 안 넣을 수는 없었지만, 빈도는 최대한 줄여놨다. 사용 경험을 해치지 않는 선까지만 넣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마저도 보기 싫은 사람들을 위해 딱 하나, 9,900원짜리 광고 제거 플랜만 만들었다. 여러 단계의 유료 등급 같은 건 없다. 베이직, 프로, 엔터프라이즈처럼 기능을 나눠서 파는 구조는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능은 무료 플랜과 완전히 동일하고, 차이는 오직 광고 유무뿐이다.

Hyper-Δ 같은 조금 더 깊이 있는 기능들은 사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게 아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서, 엔지니어 입장에서 로스팅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나중에 생각해낸 확장이었다. 처음엔 그냥 로그를 기록하고 보여주는 데만 집중했는데, 어느 순간 "이 데이터를 그냥 보여주는 것 말고, 판단에 도움이 되게 쓸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풀어보려 한다.
결국 이 소프트웨어의 시작은 실패담도, 시장 조사도, 정교한 사업 계획도 아니었다. 그냥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게 가장 정확한 대답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프로그램을 계속 다듬는 이유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내가 로스팅할 때 쓰고 싶은 기능을 하나씩 채워 넣고 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이 방식이 오히려 더 정직한 개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시장 조사부터 시작했다면 "사람들이 원할 만한 기능"을 먼저 나열했을 텐데, 나는 그 반대였다. 내가 로스팅하면서 답답했던 지점, 내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데이터부터 하나씩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기능 하나하나에 "이게 왜 필요한가"에 대한 내 나름의 명확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 요청해서 넣은 기능이 아니라, 내가 로스팅하다가 아쉬워서 직접 만든 기능이라는 점이 이 프로그램을 계속 붙잡고 있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방식은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기능을 넣을 때마다 "이게 정말 로스팅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다.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코드를 짜기 시작한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 가졌던 태도를,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