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0 로스팅 아카이브를 시작하며
로스팅 아카이브

이 공간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인스타그램에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어딘가에 제대로 남겨두는 일이었어요. 카드뉴스나 릴스는 짧고 빠르게 소비되는 형식이라 그 나름대로 좋습니다. 스와이프 몇 번이면 핵심을 전달할 수 있고,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해요.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그 형식 안에 다 담기지가 않더라고요. 왜 이 프로그램을 무료로 만들었는지, 하이퍼-Δ라는 기능이 어떤 물리적 근거로 작동하는지 같은 이야기는 몇 줄로 요약하면 오히려 오해를 살 수 있거든요. 슬라이드 한 장에 결론만 적어놓으면, 정작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맥락은 사라져버리니까요. 그래서 로그인 없이도 누구나 볼 수 있는 이 아카이브를 따로 만들게 됐습니다.
이름을 '블로그' 대신 '아카이브'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어요. 블로그라고 하면 매일 가볍게 올라오는 소식 같은 느낌이 강한데, 여기 담길 글들은 그것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로스팅을 하면서 실제로 겪은 문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하이퍼 로그에 어떤 기능을 넣었는지, 그 기능이 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을 형태로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인스타그램 피드는 흘러가지만, 이 아카이브는 쌓입니다. 오늘 올린 글도, 몇 달 뒤에 검색을 통해 우연히 찾아오신 분에게도 여전히 같은 의미로 읽히길 바라요. '아카이브'라는 이름에는 그런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누가 이 글들을 읽으면 좋을지도 생각해봤습니다. 집에서 로스팅기를 돌리는 홈로스터분, 작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직접 원두를 볶는 사장님, 아니면 로스팅을 아직 안 해봤지만 커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한 분까지, 이 세 부류를 모두 염두에 두고 쓰고 있어요. 어떤 글은 처음 접하시는 분도 편하게 읽으실 수 있게 쉽게 풀어드리고, 어떤 글은 매일 로스팅하시는 분이 아니면 조금 어렵게 느껴질 만큼 구체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아카이브 안에 함께 섞여 있을 거예요. 처음엔 쉬운 글부터 읽으시고, 조금씩 깊은 글로 넘어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 아카이브에서 다룰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입니다.
첫 번째는 하이퍼 로그라는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이야기예요. 왜 이걸 직접 만들게 됐는지, 왜 무료로 시작했는지, 지금의 가격 구조는 어떤 고민 끝에 나온 결과인지를 다룹니다. 이 시리즈는 마케팅 메시지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판단과 그 이유를 그대로 적은 글이에요. 미화하지도 않고, 실패담으로 포장하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있었던 과정을 있는 그대로 적어보려고요. 어떤 결정은 나중에 돌아보면 운이 좋았던 것이었고, 어떤 결정은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그런 것들도 굳이 숨기지 않고 적으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하이퍼-Δ라는 기능 뒤에 있는 로스팅 이론이에요. ET(환경 온도)와 BT(원두 온도)를 왜 같이 봐야 하는지, RoR(온도 상승률)이 0에 가까워질 때 로스팅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화력을 올렸는데 왜 온도가 바로 반응하지 않는지, 1차 크랙 이후 불을 줄여도 왜 온도가 계속 오르는지 같은 질문들을 하나씩 풀어볼 예정입니다. 로스팅을 취미로 하시는 분도, 매일 로스팅을 하시는 분도 한 번쯤 궁금해하셨을 질문들이라고 생각해요. 답을 드릴 때는 확인되지 않은 수치를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원리를 먼저 설명드리고, 가능하면 실제 로스팅 로그를 근거로 삼으려고 해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옮기는 게 아니라, 제가 하이퍼 로그로 직접 기록한 데이터를 보면서 쓰는 글이라는 점이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부분일 것 같아요.
사실 이 두 시리즈는 서로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이퍼 로그를 직접 만들게 된 이유와, 하이퍼-Δ라는 기능이 왜 지금의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질문이거든요. "내가 로스팅하면서 궁금했던 걸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프로그램도 만들었고, 그 안의 기능도 만들었어요. 그래서 창업 이야기를 읽으시다가 자연스럽게 데이터 이야기로, 데이터 이야기를 읽으시다가 다시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는지로 넘어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거예요.
이 글들은 전부 제가 직접 씁니다. 다른 분이 대신 써주는 콘텐츠가 아니에요. 그래서 업데이트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적어도 여기 적힌 내용은 제가 실제로 겪고 확인한 것들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고 그대로 적으려고 해요. 사진이나 실제 로그 캡처가 있으면 넣겠지만, 없다고 해서 글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글 자체로 이해가 되도록 쓰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카이브에 올라오는 글은 순서대로 읽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궁금한 제목부터 골라 읽으셔도 되고, 창업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그쪽부터, 로스팅 데이터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하이퍼-Δ 시리즈부터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하나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면, 여기 적힌 글들이 하이퍼 로그를 그냥 홍보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로스팅을 하시는 분께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남기는 게 이 아카이브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리고 매일 갱신되는 SNS 피드와 달리, 나중에 누군가 검색해서 찾아오셔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이길 바라면서 쓰고 있어요.
혹시 읽으시다가 더 궁금한 부분이 생기거나, 이런 주제를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시면 언제든 인스타그램으로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이 아카이브도 결국 로스팅하시는 분들과 함께 채워가고 싶은 공간이라, 그런 이야기들이 다음 글의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아홉 편 남짓으로 시작하지만, 앞으로 궁금해하실 만한 주제가 생길 때마다 계속 채워나갈 생각입니다.
다음 글부터는 하이퍼 로그를 왜 직접 만들게 됐는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이어가보겠습니다.